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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그는 누구인가? / 대구미술관 간송특별전 영상물로 본 간송/ 2018.6.29.

by 토토의 일기 2018.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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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간송특별전<조선회화명품전>
○전시기간: 2018. 06. 16(토) ~ 2018. 09. 16(일)
○전시장소: 어미홀, 1전시실

간송 전형필

출생-사망 1906 ~ 1962

네이버 지식사전 두산백과에 의하면 간송 전형필은,

1906년 7월 29일 서울 종로구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전영기(全泳基)이며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지낸 무관출신이고 배오개에서 미곡상을 경영했다.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고종 사촌형 월탄 박종화(月灘 朴鍾和)와 교류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1921년 어의동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 휘문(徽文)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휘문고 시절에는 야구부로 활동하였다.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1928년 일시 귀국하여 스승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을 만났으며 그의 조언으로 서화와 골동품 수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오세창으로 부터 간송(澗松)이라는 아호를 받았다. 

1929년 부친이 세상을 떠났고 1930년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간송은 부친이 물려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는데 논 800만 평이 넘는 거대한 재산이었으며 해마다 2만 석의 쌀을 수확할 수 있었다. 간송은 조선의 중요한 서화를 수집하면서 안목을 키워나갔고 스승 오세창의 지도와 조언을 받아 문화재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사동에 소재하는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인수하여 경영하면서 고서적과 서화, 화첩 등을 수집하였고 한국의 중요한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그의 막대한 재산은 국내문화재를 구입하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전국의 거간꾼과 국내, 일본의 수장가를 찾아다니며 문화재를 구입하였고 경매를 통해 문화적 가치가 높은 다수의문화재를 수집하였다.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1938년 개인 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현 간송미술관)을 세웠다. 1940년 경영난에 빠진 보성(普成)고보를 인수하여 교주(校主)가 되었으며, 1945년 광복이 되자 보성중학교 교장직을 1년간 맡았다. 1954년 문화재 보존위원이 되고, 1956년 교육공로자로 표창을 받았다.

그가 막대한 돈을 들여 수집한 문화재중에는 1942년 일본인 몰래 안동에서 기와집 10채를 살 수 있는 거금 10,000원을 주고 구입한 《훈민정음(訓民正音)》 원본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서적·고서화·석조물·자기 등이 있으며, 10여 점 이상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가 소장한 문화재 중 신윤복의 화첩도 유명하다. 1962년 문화포장, 1964년 문화훈장 국민장, 2014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오늘 대구미술관 간송특별전 조선회화명품전을 관람하고 나서 어렴풋이 이름만 들었던 간송 전형필 선생에 대해 이모저모 찾아보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분이 훈민정음('훈민정음'은 우리 글자인 '한'의 창제 당시 이름이기도 하고, 우리 문자의  제자 원리 制字原理 등을 한자로 해설한 책이름이기도 하다. 간송이 품에 안고 지켜낸 훈민정음 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원본을 지켜냈기 때문에 문자 창제의 원리가 문서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세계 어느 문자도 제자 원리가 남아있는 것은 없다. 한글이 유일하다. 간송이 집 열 채의 값을 지불하여 훈민정음을 지켜내지 않았다면, 한글의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었을까. 한 개인이 어떻게 이렇게 위대한 일을 했는지 ....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분이었다.

또한 전형필 선생은 30점이나 되는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가 실려 있는 <혜원전신첩>을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 일본에 가서 찾아왔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간송이 소장하게된 시기와 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간송이 비용과 노력을 기울여 이 그림을 지켜내지 않았다면 이  복스럽고 어여쁜 자태의 조선 미인도를 우리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길이가 8미터에 이르는 대작 심사정의 <촉잔도권>을 기와집 다섯 채 값으로 구입하여 더 많은 돈을 들여 수리하였다고 한다.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모습, 미술교과서에도 실렸던 이 작품은 간송이 기와집 20채의 값으로 사들인 것이라 한다.
청자상감 운학문 매병

간송 전형필을 소개하는 영상물도 꼼꼼히 챙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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