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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18세기 덴마크 궁중 비사를 그린 영화 <로얄 어페어> 나라를 변화시킨 그들의 비극적인 1460일간의 스캔들

by 토토의 일기 2022.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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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얄 어페어 상세 줄거리와 결말('로얄 어페어'는 '왕실 사건'이란 뜻)


18세기말 유럽 전역, 귀족들은 강한 종교의 힘을 기반으로 억압적인 통치를 펼쳤다. 하지만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 지식인과 자유 사상가들이 개혁과 민중의 자유를 요구하는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영화는 덴마크 왕비 캐롤라인이 참수된 연인 요한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유배지인 독일에서 죽음(병사)을 앞두고 자신의 아들 딸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편지를 통해 전해 주려는 것이다.




잉글랜드 왕 조지 3세의 여동생인 캐롤라인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7세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된다. 한 나라의 왕비로서 왕을 사랑하고 존경하겠단 각오로 결혼했으나,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크리스티안 7세는 예술과 문학에 조예가 깊다는 소문과는 달리 결혼 이후에도 왕비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난잡한 성생활로 결혼 생활을 지옥으로 만든다.



그와 함께 여생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괴로운 하루하루를 지내며 그를 증오하게 된다. 첫날밤을 치른 이후 캐롤라인은 임신을 하게 되고 그걸 핑계로 왕을 멀리한다. 왕은 심술이 났는지 캐롤라인의 시녀까지 해고해 버린다. 왕자 프레데릭을 출산한 캐롤라인을 두고 왕은 혼자 유럽여행에 나선다.

독일 알토나, 덴마크 식민지 1768년. 보수적인 목사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계몽사상가가 된 동네의사 요한 스트루엔시는 난봉꾼 란차우 백작한테 왕진을 갔다가 왕의 주치의 모집 얘기를 듣는다. 유럽 여행 중인 왕의 정신병이 심해져 여행 동안 왕을 돌볼 의사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은 연극을 좋아하는 왕의 비위를 잘 맞추어 주치의로 뽑힌다.

1769년 덴마크 코펜하겐. 요한은 귀환하는 왕을 따라 궁중으로 들어온다. 왕이 어릴 때부터 함께한 개인교사를 해임한 것을 두고 궁중에서는 요한이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우려하며 그가 왕을 매음굴로 이끄는 난봉꾼이라는 소문을 전한다. 왕은 요한을 의회에까지 대동하고 거기서 요한은 의원들이 왕을 꼭두각시 취급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약속대로 요한은 자신을 왕의 주치의가 되도록 길을 터준 란차우 백작과 브란트를 다시 궁으로 불러들인다. 밤늦게 매음굴에서 돌아오는 왕과 요한 일행을 잔소리로 맞이하는 캐롤라인에게 왕은 "네, 어머니."하면서 비웃듯이 말한다.(그날 이후 크리스티안은 캐롤라인을 어머니라 부른다.)

이튿날 왕의 권유로 요한에게 건강 검진을 받으러 들른 캐롤라인은 요한의 방에서 장자크 루소의 계몽서적을 발견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어디를 가나 구속당한다."(루소)

요한의 제안으로 독일 홀슈타인 여름별장으로 왕실 가족이 여행을 떠난다. 왕은 요한에게 전적으로 마음을 의지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캐롤라인 역시 계몽서적에 대한 공통 관심사로 점차 가까워져 함께 승마를 하며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요한은 사회적 제도가 인간의 삶을 어렵게 하고, 종교와 결혼이 개인의 자유를 뺏는다고 말한다. 돌아오는 길에 귀족 사유지에서 목마(木馬) 당해 죽은 소작인의 비참한 시신을 보고 요한이 나무에 묶인 시신을 땅에 내려준다. (권력을 가진 귀족이 소작인의 목숨줄조차도 좌우할 수 있는 당시의 비참한 사회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코펜하겐 1769년, 천연두가 창궐하여 시민들이 죽어나가고 특히 어린아이들의 희생이 두드러진다. 요한은 의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왕과 왕비의 허락하에 왕자에게 천연두 예방백신을 접종한다. 접종 성공으로 왕자를 지킨 왕비는 시립병원 환자들에게 백신을 접종하자고 건의를 한다. 의회에서는 비용이 있음에도 추후 고려하겠다는 결정을 하고, 화가 나있는 왕비에게 요한은 자신이 쓴 계몽서적을 몰래 보낸다. 요한과 왕비는 서로의 마음이 하나임을 알고 왕과 함께 있는 장소에서도 은밀한 눈빛을 주고 받는다. 이를 눈치챈 왕의 시종 브란트는 아서왕이 랜슬롯 경과 귀네비어의 불륜을 알고 그들에게 사형을 내린 역사소설 얘기를 하며 단두대에 오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린 요한은 대답없이 자리를 뜬다.

캐롤라인은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 줄 계몽주의의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요한이 왕의 힘을 등에 업고 시도해 볼 것을 권유한다. 캐롤라인의 충고에 힘입은 요한은 왕의 힘을 이용해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보려는 시도를 한다. 자신이 펼치고자 하는 정책을 왕한테 연극대사처럼 연습시켜 의회에서 발표하도록 하는 것이다. 연극을 좋아하는 왕은 요한의 뜻에 따라 의회 에서 안건을 발표하여 의결을 끌어낸다.

궁중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날 요한과 케롤라인은 함께 춤을 추며 뜨거운 마음을 주고받고 은밀히 키스까지 하게 된다. 다음날 밤, 비밀 쪽지를 보내 요한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인 캐롤라인은 요한과 불륜의 첫날밤을 보낸다.

왕을 내세워 개혁을 추진하려는 일이 처음에는 먹히는가 싶더니 의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왕도 차츰 흥미를 잃어간다. 다시 동력에 힘을 보태기 위해 왕과 캐롤라인은 요한을 의회로 들여보낼 계획을 세운다. 반면 귀족 의회측에서는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왕의 계모 율리안느를 앞세워 요한의 개혁사상(천연두 접종, 보육원 설립, 소작농 권리 확보, 고문금지, 교회의 영향력 제한 등)을 의회에 알린 뒤 그를 덴마크에서 추방시킬 음모를 꾸민다. 결전의 그날, 만장일치로 의결된 추방령에 의해 요한이 끌려가는 그 순간 왕은 과감하게 상황을 뒤집는다. 의장 베른스토프를 해임하고 의회도 해산시킨다. 그리고는 국정을 처리하기 위해 왕과 요한의 2인 내각을 구성한다.

계몽주의자들의 개혁은 급물살을 타고 이후 몇 개월간 혁신적인 법안들이 통과된다. 예방접종 확대, 태형제도 폐지, 모든 시민에게 대학 입학 허가, 출판의 자유, 보육원 설립, 검열 폐지 등 마침내 계몽주의가 선구적으로 실현되어 덴마크는 유럽 여러 나라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에게 '북쪽의 빛'이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맹렬히 계몽주의를 실현해 가고 있을 무렵 캐롤라인이 요한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왕과의 잠자리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임신이라 왕을 속이기 위해 요한은 왕을 왕비의 침실로 밀어넣는다. 왕비는 장차 태어날 아이의 안전을 위해 요한과 거리를 두고 왕은 자신의 아이라 믿고 왕비의 곁을 지킨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요한은 정책 결정에 있어 왕을 패스하는 독단적인 태도를 보이고 결국 왕의 최종 결정권까지 뺏아버린다.

파산을 막아 달라는 난봉꾼 란차우 백작의 청을 거절한 요한, 궁중에서 겉도는 캐롤라인. 그들 둘 사이에 묘한 교류가 있다는 걸 눈치채는 왕의 계모 율리안느. 율리안느는 시녀들을 닥달하여 둘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된다. 공주를 출산한 왕비는 왕과 시종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진료를 핑계로 요한을 남게 하여 그에게 아기를 안아볼 기회를 준다.

한편 율리안느와 굴베르그 일당은 왕의 이복동생을 후계자로 세울 쿠데타를 모의하는데 요한이 만든 검열 폐지를 이용해 요한과 캐롤라인의 스캔들을 인쇄하여 유포시킨다. 이를 보게 된 왕이 격분하고 요한은 사실을 부인하며 왕을 달랜다. 캐롤라인은 아이를 데리고 국외로 피신하자고 하지만 요한은 반대파 핵심인물인 굴베르그를 찾아가 모든 직책을 버리고 궁중에서 떠나라고 말한다. 온갖 소문으로부터 왕의 귀를 막기 위해 요한은 왕을 궁중에 유폐시키고 흑인 시동 모라티를 같이 놀 친구로 붙인다. "왕국의 몰락을 지켜만 볼 것인가? " "위험에 처한 왕, 불경스러운 동맹." "왕을 독으로 미치게 하다." "왕비가 아들을 죽이고 딸을 상속자로 만들려 한다." 등의 각종 소문이 인쇄물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자 요한은 결국 폐지했던 검열제도를 부활시킨다.

하지만 한번 의심에 빠진 왕은 요한의 적극적인 부정에도 그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혼자 딸 루이자 오거스티 방에 있다가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보게 된 캐롤라인에게 어머니 아무짓도 안했어요. 라는 말을 하고 뺨을 맞는다.(내가 왜 당신 엄마냐고).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왕은 왕실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루이자가 프로이센의 왕의 딸이라고 소리친다. 왕은 요한(크리스티안은 요한을 프로이센의 왕이라고 불러왔다.)의 딸이라고 말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크리스티안의 딸이라고 들을 수 있는 애매한 상황이다.

밖으로 나온 크리스티안에게 요한은 그런 미친 짓을 또하게 되면 예전처럼 왕따가 될 거라 겁을 주고 요한을 잃고 싶지 않은 크리스티안은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다며 눈물을 흘린다

율리안느와 굴베르그는 이틀 후 무도회가 열리는 날을 거사일로 잡는다. 1772년 1월 16일. 캐롤라인은 다시 요한에게 다른 나라로 피신하라고 권하지만, 요한은 덴마크의 개혁을 멈출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율리안느는 근위대장을 불러 왕실근위대의 임금 삭감안을 보여주며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인다. 굴베르그는 난봉 도박꾼 란차우를 찾아가 빼앗긴 재산과 직위를 돌려주겠다며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왕을 보여 달라. 독일인에게 죽음을 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횃불을 든 백성들이 근위대장의 인솔로 궁으로 몰려든다. 요한은 크리스티안에게 백성들에게 얼굴을 비쳐주라고 부탁하지만 두려움에 떨던 크리스티안은 강력히 거부하고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 "이젠 자네가 왕이야. 알아서 해." 무도회장에서 백성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며 요한과 캐롤라인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기억나요? 우리의 첫날밤?" "그때 이후로 줄곧 불행했던 것 같아." "저는 행복했는데.""오늘밤 올래요?"라는 말을 끝으로 캐롤라인은 왕의 이복동생의 춤 신청을 받아들여 춤을 추러간다.(이것이 이들의 마지막이다.)

한편 굴베르그 일당은 침실에서 겁에 질려 있는 왕을 찾아가 요한을 백성들에게 내주라고 한다. 왕이 거듭거듭 거부하자 란차우가 등장하여 왕비와 요한, 브란트가 왕을 시해할 음모를 꾸몄다고 거짓 증언한다. 그래도 끝까지 체포영장 서명을 거부하는 크리스티안에게 굴베르그가 큰소리로 윽박질러서 기어코 서명을 받아낸다.
서랍에서 캐롤라인 방 열쇠를 꺼내려던 요한은 수상한 발자국 소리에 운명을 예감하고 곧이어 들이닥친 굴베르그 일당에게 잡혀간다. 곧이어 캐롤라인도 란차우가 데리고온 근위대에 끌려 프레데릭은 빼앗기고 루이자만 데리고 수녀원으로 쫓겨난다. 브란트와 함께 잡혀간 요한은 근위대의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왕비를 유혹해서 반란을 꾀하고 왕을 시해할 음모를 꾸며 덴마크를 어지럽힌 죄를 지었다며 거짓으로 자백하고 만다.

사형집행일, 그의 감방으로 찾아온 목사는 왕이 사면해 주기로 했다면서 내각이 원하는 모든 죄를 시인하는 진술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요한은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하고 브란트와 마차에 올라탔는데 구경꾼들이 몰려가는 걸 보고 일이 잘못되었구나 예감한다. 왕 역시, 자신은 요한의 사형집행을 면해 주었는데 백성들이 거리에 몰려가는 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굴베르그는 시침을 딱떼고 들은 바 없다고 말한다. 처형장에 도착할 때까지 왕에게 사면받으러 가는 줄 알고 있던 브란트가 먼저 처형당하고, 뒤이어 요한이 끌려나간다.

구경하러온 백성들이 요한에게 폭력을 행사하자 요한은 난 당신들 편이라며 울부짖는다. 결국 자신이 그토록 지켜주려 했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그는 단두대에 처형당하고 만다.

요한의 소식을 들은 캐롤라인은 대성통곡하고, 거짓 증언했던 란차우는 굴베르그에게 철저히 이용당했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굴베르그는 크리스티안을 국정에서 배제시키고 모든 것을 개혁 이전으로 돌려놓는다. 덴마크는 다시 중세 암흑의 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캐롤라인은 루이자까지 빼앗기고 독일로 추방된다. 영국 하노버 왕가의 독일 영지인 첼레의 새집에서 크리스티안에게 쫓겨났던 옛 시녀를 만나 그녀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게 된다. 첼레에 유폐된 지 5년, 삼엄한 감시 속에서 사는 동안 병이 악화되어 죽기 전에 아들 딸에게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기 위해 편지를 쓴다.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면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캐롤라인은 눈을 감는다.

1783년 덴마크. 캐롤라인의 유언을 받들어 청소년이 된 프레데릭과 루이자를 찾아 덴마크로 온 시녀는 코펜하겐 근교에서 그들을 만나 편지를 전해준다.
"프레데릭, 루이자 오거스타. 너희들이 덴마크의 마지막 희망이야. 자랑스러운 내 아이들 정말 사랑한단다. 너희의 엄마 캐롤라인 마틸다"

궁으로 돌아온 프레데릭과 루이자는 아버지 크리스티안의 방으로 간다. 이 세사람이 앉아 있는 방에 루이자가 젖힌 커튼 사이로 환한 빛이 흘러든다. 아래 자막이 흐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왕세자는 부친의 도움으로 16세의 나이에 권력을 잡는다.굴베르구와 율리안느각료들은 추방당하고 프레데릭 통치 55년간 스트루엔시의 법안 대부분이 부활했다.프레데릭은 나아가 농노제 폐지와 소작농 해방도 이뤘다." 그리고 화면 암전.

로얄 어페어 배경지식


👩‍💻 로얄 어페어의 역사적 배경/덴마크 크리스티안 7세 때의 일(출처 나무위키)

1) 크리스티안 7세의 정신적 결함

AD 1766년 1월 프레데리크 5세가 불과 42세의 나이에 사망하고 그의 장남인 크리스티안 7세가 덴마크-노르웨이 왕으로 즉위했다. 하지만 크리스티안 7세는 어머니 루이제를 일찍 잃었고 아버지 프레데리크 5세가 방탕한 생활에만 몰두하며 그의 교육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가정교사 레벤틀로프 백작 크리스티안 디틀레브 프레데리크의 지나치게 엄격한 교육에 방치되었다. 이로 인해 크리스티안 7세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졌고 AD 1766년 11월 영국왕 조지 3세의 누이인 카롤리네 마틸다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왕비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난잡한 성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2) 요한 프리드리히 슈트루엔제의 전횡

크리스티안 7세는 AD 1768년부터 AD 1769년까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 때 의사로 수행했던 요한 프리드리히 슈트루엔제를 총애하여 그를 궁정의사로 임명했다.

이후 요한 프리드리히 슈트루엔제가 덴마크의 국정을 좌지우지하기 시작했고 AD 1770년 12월에는 추밀원 자문관으로 임명되며 실질적인 덴마크의 통치자가 되었다. 심지어 요한 프리드리히 슈트루엔제는 AD 1770년 왕비 카롤리네 마틸다의 애인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그가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16개월 동안을 '슈트루엔제 통치기(Time of Struensee)'라고 부르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요한 프리드리히 슈트루엔제는언론의 자유, 농민 부역 동원 축소, 사법 제도의 통일, 코펜하겐 자치 정부 개혁 등 여러 개혁정책을 시행했다.

그렇지만 요한 프리드리히 슈트루엔제의 전횡이 이어지면서 많은 반대파가 생겨났고 크리스티안 7세의 계모인 율리아나 마리아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텐뷔텔이 반대파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AD 1772년 1월 율리아나 마리아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텐뷔텔의 압력에 따라 크리스티안 7세가 요한 프리드리히 슈트루엔제를 왕비 카롤리네 마틸다와의 간통 혐의로 체포했고 요한 프리드리히 슈트루엔제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AD 1772년 4월 사망했다. 또한 카롤리네 마틸다도 이혼당한 채 영국 하노버 왕가의 독일 영지인 첼레 성으로 쫓겨난 후 AD 1775년 사망하게 된다.

3) 율리아나 마리아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텐뷔텔(크리스티안 7세의 계모)의 대리 통치

이후 여전히 정신병에 시달리는 크리스티안 7세를 대신하기 위해서 율리아나 마리아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텐뷔텔은 자신의 아들이자 크리스티안 7세의 이복 동생인 프레데리크 왕자를 섭정으로 내세웠지만 실질적인 통치는 총리인 오베 회그-굴드베르의 보좌를 받으며 율리아나 마리아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텐뷔텔이 직접 맡았다. 율리아나 마리아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텐뷔텔과 오베 회그-굴드베르은 보수 반동 정치를 펼치면서 귀족 특권을 부활시켰다.


👩‍💻 덴마크왕 크리스티안 7세는 어떤 사람?(출처 두산백과)


18세기 말 덴마크(Denmark)와 노르웨이(Norway)의 왕이며 슐레스비히(Schleswig), 홀스타(Holstein)의 공작이다.

1749년 1월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5세(Frederick V)와 어머니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 죠지 2세(George Ⅱ)의 딸 루이사(Louisa)의 아들로 태어났다.

1766년 1월 아버지가 사거하여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재능이 있었으나 조현증(정신분열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1766년 11월 크리스티안보르그(Christiansborg)궁에서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 죠지 3세(George III)의 누이인 캐롤라인 마틸다(Caroline Matilda)와 결혼한 뒤 정신적 혼미상태에 들어가 난잡한 성생활에 빠졌고 결국 편집증과 자해 그리고 환각상태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의 주치의 스트루엔시(Friedrich Struensee)가 1760년대에 실권을 갖게 되었고 왕비 캐로라인 마틸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로인해 1772년 왕비와 이혼을 하고 스트루엔시는 처형당했다.

캐롤라인 마틸다 여왕으로부터 프레데리크 6세(Frederick VI)와 루이스(Louise Auguste)공주를 두었는데 루이스 공주는 스트루엔시의 딸이라고 알려져 있다.

1772년부터는 건강 악화로 명목상의 왕에 불과하였고 1772년부터 1784년 사이 덴마크는 계모인 브룬스빅-울펜뷔텔(Brunswick-Wolfenbüttel)의 율리아나 마리아(Juliana Maria)와 장애인 처남 프레데리크 등에 의해서 통치되었다.

1784년부터 아들 프레데리크 6세(Frederick VI)가 왕자 섭정으로서 통치하였고, 1808년 59세의 나이로 두뇌 동맥류으로 사거하여 로스킬데(Roskilde)성당에 안장되었다.

👩‍💻 덴마크 최고 권력자가 된 독일인 의사 요한 프리드리히 슈트루엔제 (출처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 로얄 어페어 실화 주인공

1770년 12월, 독일인 의사인 슈트루엔제는 덴마크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는 덴마크어를 할 줄도 몰랐으며 최신식 계몽주의 개혁을 수행하려는 목적에서 덴마크 국민과 그 관습을 하찮게 여겼다. 슈트루엔제의 독특한 이력은, 주체할 줄 모르는 야심과 권력을 향한 냉혹한 욕망을 펼치다가 피해갈 수 없는 복수를 만난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독일 할레에서 신학자이자 목사인 아버지에게서 슈트루엔제는 젊은 나이에 루소의 평등주의적, 무신론적인 사상을 받아들였다. 외과의사가 된 뒤 그는 궁정에서 추방당한 한 정치 파벌에 이끌려 덴마크로 갔다. 그들은 슈트루엔제를 왕의 주치의로 삼아 조현증(정신분열증)을 앓는 젊은 왕 크리스티안 7세를 다시 한 번 자신들의 뜻대로 휘두를 생각이었다. 슈트루엔제는 왕의 정신병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치유했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왕을 좌지우지하게 되었으며 잉글랜드 왕 조지 3세의 여동생인 젊은 왕비 캐롤라인 마틸다의 애인이 되자 그의 지배력은 한층 굳어졌다.

처음에는 꼭두각시 정치인들을 통해 통치하던 그는 1770년 12월 덴마크의 절대 권력자가 되었으며, 몇 천 가지의 급진적인 개혁책을 제시했는데, 진보적인 것도 있었고(고아원 설립, 사형의 축소, 고문 폐지) 별난 것도 있었다(무도회며 가면무도회 비용을 대기 위해 관리들의 임금을 대폭 삭감했다).슈트루엔제가 권력을 휘두르자 이는 보수적인 덴마크 귀족층의 비위를 크게 거슬렀고, 그와 왕비, 그리고 슈트루엔제와 한편인 왕의 시종 브란트를 체포하려는 음모가 싹텄다. 왕비가 루이자 아우구스타라는 딸을 낳은 것을 계기로 궁정 내에서 모반이 일어났다. 다들 공주가 슈트루엔제의 아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1771년 1월 세 사람은 모두 체포되었다. 스스로 고문과 사형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슈트루엔제와 브란트는 오른손을 잘리는 벌을 받은 뒤 참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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