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이야기

대구 여행지/영천 여행지/조선시대로의 여행/영천 화남면 귀애고택&귀애정 /2018.8.19.

by 토토의 일기 2018. 8. 20.
반응형


한 달 이상 지속된 폭염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는데 고맙게도 말복날 비가 내리더니, 그날부터 좀 시원해졌다. 아직 늦더위는 남았겠지만 하늘 푸르고 바람 산들거리는 이 날씨를 그냥 보낼 수는 없어서 길을 나섰다.

목표지는 영천시 화남면에 있는 귀애고택

그곳에서 고택음악회를 한다고 TV자막에 계속 홍보를 하는 걸 보았다. 18일 토요일 저녁 7시. 꼭 가보고 싶었는데 그날따라 사정이 여의치않아 놓쳤다. 뒤늦게라도 그곳이 어떤 곳인가 가보고 싶었다.

28번 도로를 타고 와서, 오미교차로에서 35번 청송 방향으로 갈아탔다.

정면에 보이는 화남면 사무소 앞에서 신녕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조그만 고개 하나만 넘으면 오른쪽 산아래 기와집 몇 채가 멀리 보인다.

귀애고택은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 에 있는 조선시대 양반가옥이다.

문헌공 조명직(曺命稷)[1733~1807]이 1767년(조선 영조 43)에 이곳으로 이주해 온 뒤 귀애 조극승(曺克承)[1803~1877], 운파 조병수(曺秉秀)[1832~1903] 등 일산 삼대가 귀애정·사당·별묘·육각정 등 47칸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이 글의 역사적, 건축학적 자료는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참고로 하였다.)

음악회에 1500여명의 관객이 왔다더니, 쓰레기 봉투가 집앞에 가득 쌓여 있다. 고택을 지키는 분들이 뒤처리하느라 고생했을 것 같다.

귀애고택의 대문간채 앞에 넓은 주차장이 있다. 귀애정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관람객들에게 개방된 시설이기는 하나 귀애고택은 주인이 거주하고 있는 집이라 대문이 열려 있다 해도 들여다보기가 망설여졌다. 차 소리를 듣고 땀 범벅이 된 젊은 주인이 반겨 맞아주신다. 이 고택의 종손. 음악회 뒷정리로 힘들 텐데도 표정이 참 좋다.

고택 안에 이런 조형물이 몇 개 보였다. 주차장에 있는 이 조형물은 휴식과 기다림(박성철)

주인장과 몇 마디 주고받고 있는데, 요 쪼꼬만 강아지 두 마리가 살갑게 다가와 우리 주변을 맴돈다. 어린 생명은 다 이쁘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니 환한 마당이 보인다. 경북 지역 양반가옥을 보면 사랑채는 별도의 바깥공간에 배치되어 있고 안채는 입구자(口) 모양으로 폐쇄적인 공간 배치를 보이는데 귀애고택은 튼 디귿자형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그래선지 마당도 입구자 형태의 구조보다 넓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환하다.

왼쪽에 덩그렇게 올라서있는 듯 보이는 건물이 큰채이다. 귀애고택 중 건립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은 큰채 뿐이다. 큰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 규모이며, 구조는 주상부에 장여 수장한 3량가 맞배기와집이다. 집 뒤편의 야산에 바짝 붙여 큰채를 북동향으로 앉혔다. 시멘트로 마감한 2단의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민흘림기둥을 세운 뒤 벽을 치고 창호를 달았다. 정지와 대청의 벽은 판벽이고, 그 외는 심벽이다. 창호는 정지문이 쌍여닫이 띠장널문, 대청은 뒷문이 쌍여닫이 울거미 띠장널문이고 앞문은 쌍여닫이 굽널세살문이다.
🔻

솟을대문을 들어서서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이다. 1988년 전기 누전에 의한 화재로 사랑채·아랫사랑채 등 15칸이 소실되었고, 1991년 사랑채를 현 위치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

대문간채, 방앗간채 등도 있지만 (귀애고택은 살림공간이기 때문에 너무 기웃대는 건 민망하여) 빠르게 고택 뒤 별도 공간에 있는 귀애정으로 향했다.

고택을 둘러싼 토석담이 정갈하다. 토석담 옆에 탐스럽게 서 있는 나무도 아름답다. 무슨 나무인지는 봄에 피는 꽃을 봐야 알 수  있을 듯.(휙  스쳐와서 무슨 나무인지 살펴보지 못했다.)
 

이 조형물은 글씨를 투각한 것인데 음악회가 열렸다는 잔디밭에 무대 뒷배경처럼 서 있었다.

조극승(曺克承)[1803~1877]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이 창녕이고 자는 경휴(景休), 호는 귀애(龜厓)이다. 조극승은 성품과 도량이 돈후하고 단정했으며, 효도와 공부에 힘써 1831년 순조(純祖) 신묘년(辛卯年)에 식년문과에 등제했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고 집 근처[현재 귀애정 터]에 작은 건물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영천 귀애정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극승이 태어난 고택 인근에 작은 정사 건물을 짓고 후학에 힘썼다는 기록을 볼 때 19세기 후반 경에 초창되었으리라 판단되며 조극승의 사후[1877] 공을 추모하기 위해 1917년 후손들이 정사 터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했다.

1997년 12월 19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9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귀애고택 쪽에서 귀애정 들아가는 문이다.
🔻

정자 앞 잔디밭에 아기똥풀 노란꽃이 피어 있다.

1917년 귀애정 중건하던 해에 좌측에 연접해 조극승의 사당 2칸도 건립했다. 1978년 정자의 기둥과 마루의 보수가 있었고 귀애 선생이 불천위로 모셔지면서 사당을 현재의 3칸으로 증축했다.

귀애정 옆에 있는 사당건물
🔻

귀애정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一’자형 주사(主舍) 건물에 정면 1칸, 측면 3칸의 ‘|’자형 익사(翼舍) 건물을 합해 전체적으로 정면 4칸, 측면 3칸의 ‘ㄱ’자형이다.

주사를 ‘몽희헌(夢喜軒)’[희(喜)자는 정확히 판독하기 어렵지만 기타 문헌에 ‘희(喜)’로 표기되어 있어 인용함], 익사를 ‘수월루(水月樓)’라 편액하여 전체를 귀애정이라 한다.

귀애정의 주건물 몽희헌 현판
🔻

주건물 몽희헌과 날개건물 수월루를 합쳐서 귀애정이라 한다.
🔻

귀애정의 날개건물 수월루 현판
🔻

영천 귀애정은 현재 정자 앞 연지에 육각 정자와 이곳으로 통하는 목교가 복원되어 있다. 『영천문화유산답사기』에 따르면 약 20년 전에 연지 내 섬에 육각 정자와 정자로 통하는 목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특히 방형 연지의 귀애정 쪽 석축은 중앙부가 연지 쪽으로 ‘ㄷ’자형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이는 연지의 가운데에 있는 육각정으로 다리를 놓기 위해 축조된 접안부로 추정되나 현재 복원되지는 못했다.

삼십년 전에 무너진 정자를 2009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복원된 현재 육각정자 모습
🔻

 

귀애정 앞에 있는 연지와 귀애고택 옆에 있는 연지에는 이미 연꽃이 지고 연밥이 달린 것도 있었지만, 몇 송이 남아있는 연꽃에서 연향이 얼마나 그윽히 풍기던지 한참을 연지 옆에 마련해둔 의자에 앉아 머물다가 왔다.

 

육각정자와 귀애정 모습
🔻

귀애정(사진 오른쪽)과 사당(왼쪽) 모습
🔻

정자 앞 연못 건너편 산자락에 이런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

건너편에서 바라다본 귀애정과 사당
🔻

이 탁자 옆에서 귀애정을 바라다보면 더욱 운치가 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서 더 좋았던 날. 종손께서 시원한 물을 대접해 주어서 고마웠다.

이 강아지가 끝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며 재롱을 피웠다.
🔻

🔺
귀애고택 뜰에 있던 조형물, 고가에 다소 생뚱맞은 조형물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 조각품은 귀여웠다. 별을 따려는 소년과 강아지 한 마리. 꿈을 좇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닮아서일까.

귀애고택 & 귀애정 총정리

1) 귀애고택은 영천에 있는 고택이다.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귀호1길 37-17

2) 고택체험(민박)도 할 수 있는 곳이다.

3) 귀애고택 뒤에 있는 귀애정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무료개방되고 있다.

4) 연꽃이 아름다운 곳이다.

5) 가족여행지로 좋은 곳이다.

귀애고택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gwiae.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