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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부처님 나라(불국)로 가는 두 개의 문/자하문,안양문/2018.4.25.

by 토토의 일기 2018.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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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25.불국사

《삼국유사》에서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창건하였다.” 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지었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 전생의 부모를 기억하는 것이 신기했었다.

그러나 불국사는 75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김대성이 생애를 마칠 때까지 완공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뒤 국가에서 완성시켰다고 한다. 따라서 불국사는 김대성 개인의 원찰(願刹)로 보기보다는  국가의 원찰로 보는 것이 옳을 듯.

전에 불국사를 다녀갈 때는 나무나 꽃이나 연못(커다란 잉어가 노니는) 건축물의 아름다움 등에 매료되었었다. 내게 불국사는 언제나 웅장하고 멋진 절이었다.

이번에는 문화해설사의 뒤를 따라다니며 불국사에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불국사 일주문,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청운교ㆍ백운교이다. 나는 불국사에 올 때마다 이 다리(계단을 다리라 이름 지은 신라인의 상상력이 아름답다.)만 봤었다. 그 옆에 또 하나의 다리는 지나쳤었다. 한 가지에만 확 꽂히는 나만 그런가? 다른 분들은 어떠하셨는지?

이 다리의 아름다움에 홀려 이렇게 사진을 찍었었다. 이름도 유명한 청운교ㆍ백운교.

이번에 갔을 때는 이 다리 밑에서 한참을 설명들었다. 요즘으로 치면 내진설계에 해당하는 '그렝이공법'과 계단을 계단이라 부르지 않고 다리라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청운교ㆍ백운교 옆에 있는 연화교ㆍ칠보교에 대해서도 들었다.

1) 그렝이 공법이란

그렝이 공법은 인공석을 자연석에 맞추어 깎아 딱 맞물려 놓은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해놓으면 지진도 견딜 정도로 튼튼해진다고 하는데, 얼마 전 경주 지진에서도 불국사가 안전했던 이유는 이 공법으로 건축물의 기초를 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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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렝이공법'이 사용된 부분. 불국의 위엄을 나타내는 높다란 석단을 쌓을 때 아래에 괴인 자연석 모양에 맞추어 윗돌을 깎아맞추었다. 이 그렝이공법은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석단 아래에 있는 속계에서 석단 위 불국으로 가는 두 쌍의 다리와 문

불국사는 불교사회였던 신라인의 피안의 세계인 불국(佛國), 즉 부처님의 나라를 옮겨놓은 절이다.

석단 위에 있는 불국으로 오르는 다리는 청운교ㆍ백운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웅전을 향하는 국보 제23호인 청운교(靑雲橋)·백운교(白雲橋). 그  옆에 극락전을 향하는 국보 제22호인 연화교(蓮華橋)·칠보교(七寶橋)가 더 있다.

청운교·백운교는 석가모니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자하문에 연결되어 있고, 연화교ㆍ칠보교는 아미타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안양문에 연결되어 있다.


불경에 따르면 부처님이 사는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물을 건너고 또 구름 위로 가야 하는데 그걸 표현한 것이 이 '다리'라는 것.그래서 계단을 '계단'이라 하지 않고 '다리'라 부른다고  한다. (신라 때 이 다리 밑에는 구품연지라는 연못도 있었다 하니 이 계단을 다리라 불러도 현실적으로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을 듯하다.)

구품연지 옆 낮은 중생계에서 높다란 석단 위에 있는 부처님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이 다리를 건너야 부처님의 나라로 오를 수 있었다.  신라인의 그 종교적인 상상력이 이 아름다운 청운교ㆍ 백운교, 연화교ㆍ칠보교를 탄생시킨 것이다.



3) 청운교ㆍ백운교를 올라 자하문으로 들어가는 길

 

청운교·백운교는 33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33계단은 33천(天)을 상징하는 것으로 욕심을 정화하여 뜻을 두고 노력하는 자들이 걸어서 올라가는 다리라고 한다.
청운교ㆍ백운교를 오르면 자하문이 있다. 자하문이란 붉은 안개가 서린 문이라는 뜻이다. 이 자하문을 통과하면 세속의 무지와 속박을 떠나서 부처님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부처님의 몸을 자금광신(紫金光身)이라고도 하므로 불신에서 발하는 자주빛을 띤 금색 광명이 다리 위를 안개처럼 서리고 있다는 뜻에서 자하문이라 한 것이란다.
자하문을 들어서면 대웅전. 드디어 석가모니부처님의 불국토에 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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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교ㆍ백운교는 이 홍예(홍예란 무지개 같이 휘어 반원형의 꼴로 쌓은 구조물) 때문에 조형적으로 더욱 아름답고  구조적으로 안정성을  확보한다고 한다.

4) 연화교ㆍ칠보교를 올라 안양문으로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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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연화교ㆍ칠보교를 올라 안양문을 지나면 극락전에 이른다. 아미타불이 있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곳이다. 안양은 극락의 다른 이름이며, 안양문은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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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교ㆍ칠보교 계단 바닥에  지금도 연꽃 무늬가 남아 있다고 해서 아래에서도 살펴보고 위에서도 살펴봤는데 시력이 워낙 좋아 잘 찾아지지 않았다.

이 다리들이 국보로 지정받은 이유는  조선시대와 현대에 와서 부분적으로 중수되긴 했으나 불국사가 만들어질 때의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국사에 구경왔던 왜놈들이 지장전에 감추어둔 병기를 발견하고 그걸 빌미로 불국사를 불태울 때, 돌로 만든 이 다리들과 다보탑, 석가탑이 화재에도 살아남았다 한다. 불국사의 건물 기초가 되는 돌들을 보면 화재의 흔적으로 거뭇거뭇한 부분들을 찾아볼 수 있다. (모름지기 힘이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지금보다 열 배로 규모가 컸다는 불국사. 그 석단 위에 조성한 부처님 나라는 왕과 귀족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저 아름다운 계단을 오를 수  있었던 이들도 그들뿐이었다니. 어떤 백성이 왕에게 우리도 가 보고 싶다고 원을 올리니, "영지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라." 는 기막힌 답을 내렸다는데.

그래서 일반 백성들은 경주 남산에 지천으로 널린 돌들로 소박한 불상을 만들고, 마애불을 만들고, 탑을 만들고 했다 한다. 그런 방법으로라도 부처님께 가 닿고 싶어서. (예나 지금이나 있는 자들의 갑질은 과도하다.)

지금 이 계단은 폐쇄되어 있다. 70년대 국민학교 수학여행 왔을 때도 이 계단을 오른 기억은 없다. 언제쯤부터 국보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개방을 금지시켰는지는 해설사분도 잘 모른다고 했다. 소중한 것을 소중히 다루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외의 낙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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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영루

범영루는 처음에 수미범종각(須彌梵鐘閣)이라고 불렀다. 수미산모양의 팔각정상에 누를 짓고 그 위에 108명이 앉을 수 있게끔 하였으며, 아래에는 오장간(五丈竿)을 세울 수 있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108이라는 숫자는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것으로, 많은 번뇌를 안은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108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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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영루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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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교ㆍ칠보교 앞 소나무 사이에 버려진 듯 서 있는 두 쌍의 당간지주







불국사의 문화해설사님 설명을 듣고 아래 자료를 더 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위대한 문화 유산(최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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