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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의 육아일기

배냇저고리(배내옷) 언제까지 입히나?

by 토토의 일기 202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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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둘을 키웠지만 배내옷을 언제까지 입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손녀를 키우는 아들 내외를 보니 백일 무렵까지 배내옷을 입힌 것 같다.



배냇저고리: 깃과 섶을 달지 않은 아기 옷. 배내옷, 깃저고리라고도 한다. 희고 부드러운 무명이나 명주로 만드는데, 등에 솔기를 하지 않고 배와 손을 덮을 정도로 길게 만들었다.


배내옷의 특징은 등에 솔기가 없다는 것인데 아기들 여린 살이 솔기에 부대끼지 않도록 부드러운 유기농면으로 특수하게 만들어진다. 요즘은 엄마나 할머니가 극진한 기원을 담아 배냇저고리를 손수 만들기도 한다. 유투브에 배내옷 만드는 방법이 나온다. (나도 손녀의 건강을 기원하며 한땀한땀 만들었다.)

처음 엄마가 되면 배내옷을 언제까지 입혀야 하는지 궁금해 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궁금하고 조심스러운 것이 아기 키우는 일이다.



🌷배냇저고리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배냇저고리의 예시




정의

생후生後 사흘째 되는 아침에 인간이 처음으로 목욕하고 입는 옷.(병원에서 아기가 갓 태어나면 몸을 닦고 강보에 싼다. ※강보 襁褓갓 태어난 아기의 몸을 단단하게 싸매는 천. 어린아이의 작은 이불.)

배냇저고리는 아기가 태어나면서 처음 입는 옷이다. 배 안에 있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저고리라는 의미로 보통 명주나 면으로 만들었으나, 서민들은 부드러운 무명이나 융으로 만들었다. 여름에는 풀기를 제거한 부드러운 베나 모시를 사용하기도 했다. 배냇저고리는 신랑이 신부에게 보내는 함에 준비하여 넣었다고 하는데, 신랑의 배냇저고리를 보관해 두었다가 넣기도 하였다. 남자아기의 배냇저고리는 재수가 있다하여 시험이나 송사에 몸에 지니면 길하다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집안의 장수한 어른이나 어머니의 옷으로 만들어 입히기도 했다.


울산 지역에서는 배냇저고리를 해산(解産) 전에 미리 장만해 두었다. 보통 두 벌을 만들어 생후 사흘 날부터 백일 때까지 갈아 입혔다. 옷감으로는 융, 옥양목, 담 등을 사용했다. 배냇저고리를 만들 때에는 옷고름 대신 실을 매달아 아이의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했다. 가정에 따라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군 복무 기간 동안 배냇저고리 일부분을 몸에 지니게 하기도 했다.

배냇저고리는 출산出産이 가까워질 때나 해산 후에 만든다. 주로 출산 후에 만들었는데, 이는 미리 준비하면 귀신(삼신할머니)의 심술(해코지)로 출산이 더디거나 불상사가 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보통 두 벌이나 세 벌을 만들었다. “첫아이 것은 친정에서 만들어온다.”라고 하였으나, 주로 시어머니나 조모 또는 친정어머니나 본인이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첫아들을 낳았고, 부부해로夫婦偕老하고 무병장수하며, 행동거지가 바르며 복덕福德 있는 어른이 만들어 주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다.



특징 및 의의

배냇저고리는 옷감 색, 크기, 부분 이외에도 만들기, 처리하기 등에서도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옷고름인데 반드시 무명실로 달았다. 그 실의 긴 길이를 오래 살기[長壽]와 연관 지어 ‘명줄命-’이라 했다. 이는 ‘무병장수’를 인간 최상의 염원이며 큰 목표로 삼았던 흔적이다. 실은 홀수로 일곱이나 아홉 가닥을 사용하고, 겉고름은 허리를 한 바퀴 돌려 멜 수 있게 길게 만들었다[돌띠]. 소매는 길게 만들었는데, 손이 나와서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제주도에서는 ‘파리를 쫓는’ 용도도 추가된다. 특히 경상도에서는 “손은 도둑질에 쓰는 등 죄가 많은 물건이라 소매가 짧으면 자라서 퇴박 받기때문”이라 했다. 이는 조선시대에 관복官服을 손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길게 만든 것과 상통한다.

배냇저고리에는 많은 금기와 속신이 있지만 실용과 과학, 합리적인 면도 많다. 앞은 배를 덮어 보온하도록 길게 만들고, 깃을 달지 않은 것은, 아기는 열이 많은데다 목이 굵고 밭아서 살이 쉽게 짓무르기 때문이다 . 시접이나 솔기는 연약한 살에 자극을 주지 않도록 밖으로 처리하였다. 옷고름 길이를 목숨길이 장수長壽와 연결시킨 것, 제주의 봇뒤창옷에서 대·소변으로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뒤의 아래 쪽을 터 두는 것 등은 유사연상과 실용의 양면이 특히 돋보이는 부분이다. 배내옷은 원래 “운수 좋은 옷”으로 인식되었다. 첫 배내옷의 효험은 아들 중에서도 특히 장남이 입었던 것이 더 좋고, 그보다 장손 것이 더욱 좋다. 그래서 빨지 않고 두었다가 시험, 재판, 전쟁에 나갈 때 겉옷의 등판 속에 꿰매었다. 또한, 소중하게 입었고, 낡았어도 아무렇게나 다루지 않았다. 따라서 함부로 버리거나 걸레 같은 허드레로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깨끗한 행주로 쓰거나 태웠다. 배내옷을 함부로 버리거나 허드레 용도로 사용하면 아이가 쓸모없고 천한 사람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빨 때 두드리거나 비틀어 짜면 아기가 잘 놀란다거나, 말릴 때 나쁜 악귀가 접하면 아기가 아프다는 속신이 있어 밤에 널지 않았다. 아울러 옷을 입을 사람이 없어도 남에게는 빌려주거나 넘겨주지 않았다. 액막이 같은 나쁜 일에 쓰이거나, 자신의 복과 운이 옮겨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출처 한국일생의례사전
제공처 국립민속박물관 
http://www.nf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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