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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대구 달성 도동서원 다녀오다/ 이제는 우리 자신의 도를 찾을 때/2018.4.13.

by 토토의 일기 2018.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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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에서 도동서원까지 가는 길. 앞산터널을 지나 대구수목원 지하차도를 거쳐 테크노폴리스로를 따라 계속 직진, 터널을 여섯 개나 지나고 현풍국가산단로도 시원하게 직진으로 달려갔습니다. 고동색 도동서원 안내표지판이 보이면서 국가산단로가 끝나는 시점에 구지서로 소박한 길이 나타났습니다.

낙동강을 왼쪽에 두고 천천히 달려갔습니다.

 
드디어 도동서원.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번지. 얕으막한 산자락에 위치해 낙동강을 눈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네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주차장 옆에 있는 수령 400년 되었다는 은행나무. '김굉필'나무라 명명되어 있으나 이 나무를 심은 이는 조선 중기 성리학자 한강 정구선생이랍니다.  왕으로부터 서원 이름을 받은 것을 기념해 심었다 하는데 가을에 은행잎 물들면 전국에서 사진 작가들이 몰려올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답니다.

도동서원은 원래 1568년 현풍 비슬산 기슭 쌍계동에 건립됐으나,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습니다.
1605년 지금의 자리에 ‘보로동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중건됐다가, 1607년 도동서원으로 사액을 받았습니다.

이황은 김굉필을 두고 ‘동방도학지종(東方道學之宗)’이라고 칭송했는데
나라에서 이 서원이름을 도동(道東)으로 사액한 것도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랍니다.


서원이 건립된 ‘달성’과 ‘김굉필’이 관계를 맺게 된 연유는, 김굉필의 증조부 예조참의 김중곤이 현풍 곽씨 가문에 장가를 들면서 현풍에 정착하였기 때문입니다.

성장기를 현풍면 대니산 남쪽 솔례촌에서 보낸 김굉필은 젊은 시절 호탕하게 놀기를 좋아하고 거리낌이 없었는데, 18세 때 합천군 야로에 있는 집안에 장가들면서 처가 근처 계곡에 ‘한훤당’이라는 조그마한 서재를 짓고 학문에 열중하게 됩니다.(김굉필의 호 '한훤당'이 여기서 왔네요.)

이때 인근에 있는 함양에 군수로 있던 점필재 김종직의 수제자가 되어 소학을 배우면서 정몽주ㆍ­김종직­ㆍ김굉필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의 맥을 잇게 됩니다.

김굉필은 1454년(단종 2년) 서울에서 태어나 26세 때 과거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하다가 1498년(연산군 4년)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일파로 지목되어 평안도 희천에 유배,
이후 전라도 순천에 이배됐다가 1504년 갑자사화 때 무오당인戊午黨人이라는 죄명으로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그 후 성균관 유생들의 계속된 건의로 광해군 2년에 조선5현(정여창 조광조 이황 이언적 김굉필)으로 문묘에 배향되었습니다.

서원을 구성하는 건물들은 반듯하게 설정한 중심축을 따라 수월루(水月樓), 환주문(喚主門), 중정당(中正堂), 내삼문, 사당이 차례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물 위에 비친 달빛으로 글을 읽는다’는 뜻인 수월루水月樓는 도동서원의 문루門樓로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답답한 마음을 후련하게 풀던 곳입니다. 누각에 오르면 낙동강과 개진면 일대의 들판이 시원하게 보인다는데 지금은 일반인은 문루에  올라갈 수 없게 금지되어 있네요.
1888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1973년에 중건됐답니다.

서원 정문인 환주문은 맞담 사이에 세워진 규모가 작은 문으로 지붕이 특이한 사모지붕 (추녀마루가 지붕 가운데로 몰려 네모뿔 모양으로된 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환주(喚主)는 ‘내 심성의 주(主)가 되는 근본을 찾아 부른다’는 뜻을 가졌다네요.

중정당은 강당 건물로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강학공간입니다.
중정(中正)은 음과 양이 조금도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조화를 이루는 중용의 상태를 말한답니다.

중정당 기단은 크기와 색깔이 다른 돌들이 빈틈없이 서로 맞물려서 일체가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그 사이로 용머리 나온 거 보이시지요? 용이 이 건물을 지켜주고 있는 느낌. 하지만 왠지 으스스한.


강당 앞마당 좌우에는 동재인 거인재(居仁齋)와 서재인 거의재(居義齋)가 대칭을 이루며 마주 보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기거하던 오늘날의 학교기숙사와 같은 공간이지요.

강당 뒤 가파른 계단 위에 내삼문이 서 있고, 그 뒤에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사당이 있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사당에는 김굉필과 한강 정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매년 두 번 향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사당 담장 밑의 계단식 화단에 모란이 여러 그루 심어져 있었습니다.


도동서원을 둘러싼 토담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지요? 담장으로서는 최초로 보물로 지정되었답니다.

낙동강이 흘러가는 석문산 산자락에 그윽하게 자리잡은 도동서원. '도동'(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이라는 서원명칭을 받을 만큼 생전에 유교적 생활을 강조 실천한 한훤당 김굉필 선생님. 평생토록 '소학'(일상생활의 예의범절, 수양을 위한 격언, 충신·효자의 사적 등을 모아 놓은  어린이용 유학교과서)을 삶의 좌표로 삼아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일컬었던 분.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고 생각하고 생활하는 게 자연스러운 21세기, 선생의 정신은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을까요.

아래 사진들은 도동서원 안팎의 이런저런 모습들입니다.

돌아오는 길은 다람재를 넘어 보려고 산길로 오르다가 일차선길이 너무 좁아 보여 돌아나왔습니다. 저는 이런 산길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ㅎㅎ 도동서원 옆에 다람재 아래로는 터널공사를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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