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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경주여행지/태종무열왕릉/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왕이 잠든 곳

by 토토의 일기 2018.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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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산쪽에서 경주로 가는 국도 경주 초입에 위치한 태종무열왕릉, 경주를 헤아릴 수 없이 자주 갔지만 이 곳은  늘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그저께, 미세먼지 보통이던 날 남편과 경주나들이를 하면서 모처럼 마음이 좀 여유로워 들러보았습니다.

김유신 장군과 함께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태종무열왕을 모신 곳입니다.

입장료가 쪼끔 있어요. 주차비는 무료.

왕릉 입구입니다. '달무문'

입구를 들어서면 태종무열왕릉비를 가장 먼저 만나게 됩니다. 국보 제25호

비각 안에 거북받침돌(귀부)과 용의 모양을 새긴 비석머리(이수)가 남아있어요. 비석 몸돌은 없다고 합니다. 이수에 '태종무열왕릉'이라는 글씨가 조각되어 있어서 이 왕릉의 주인이 누구란 걸 알 수 있답니다.


그 옆에 태종무열왕릉이 있습니다.

상석인가요? 왕릉에는 혼유석은 설치 않는다고 하던데.

왕릉 둘레로 키 큰 소나무가 뺑 둘러 서있습니다. 무덤가에 둘러서있는 소나무를 도래솔이라합니다?

태종무열왕릉 뒤편으로 고분 4기(서악동 고분군)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고분의 주인은 누군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위치상 위쪽에 있으니 태종무열왕의 직계 조상들 무덤일 거라 추정한다고 합니다.


서악동 고분군을 천천히 돌아보고 있는데 계속 좋은 숲향이 나서 큼큼거렸더니 이 회양목에서 좋은 나무의 향이 나네요. 회양목을 정원수로 많이 심는 이유를 알겠군요.

고분에 이런 들꽃들이 피어 있네요. 이뻐서 찍었습니다.

경주 서쪽 초입에 있는 태종무열왕릉.

 조용하고 한적하고 숲향이 좋아 천천히 걸으며 신라를 음미해 볼 수 있는 곳. 어릴 때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통해 읽었던 태종무열왕과 김유신 누이동생 문희와의 사랑이야기, 고전소설 토끼전의 근원설화가 된 '구토지설'도 되새겨 볼 수 있는 곳. 어린 자녀가 있으면 그런 신라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걸어보면 좋겠네요. 천천히 ~

그 이야기 자료도 옮겨 드릴게요. 잘 기억하셔서 자녀들에게 들려 주시면 최고의 부모가 되실 듯. ㅎㅎ


[자료출처 : 스마트투어가이드]

진골에서 왕위에 오른 무열왕 무열왕릉은 통일신라시대의 무덤에 비해 다소 소박한 형태를 하고 있어요. 아직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굴식돌방무덤으로 추정한답니다. 무열왕릉 뒤편에는 4개의 무덤이 있는데, 이 무덤들(서악리 고분군)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어요. 다만, 무열왕릉의 뒤편에 있는 것으로 보아 무열왕의 직계 조상들의 무덤으로 보고 있죠.

무열왕은 50세가 넘어서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어떻게 왕위에 올랐는지 그 과정을 살펴볼까요? 무열왕의 할아버지 진지왕은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왕위를 잃게 되었어요. 그 결과 그의 가족들은 왕이 될 수 있었던 성골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답니다. 이후, 무열왕의 아버지 용수는 선덕여왕에게 밀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무열왕은 점점 왕위에서 멀어지게 되었죠. 하지만 그의 곁에는 신라의 장군 김유신이 있었어요. 가야계 귀족인 김유신은 무열왕처럼 신라의 권력 중심에서 배척되어 있었죠. 이렇게 같은 처지에 놓여 있던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선덕여왕 시절 일어난 비담의 난을 진압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어요. 이후, 무열왕은 목숨을 걸고 고구려와 당나라를 찾아가 외교를 펼쳤고 김유신은 전쟁의 최전선에 서서 신라군을 이끌었죠. 이렇게 두 사람의 노력으로 신라는 마침내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무열왕은 654년에 신라 제29대 왕으로 추대받았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 무열왕은 삼국통일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삼국통일의 염원을 이루게 된 건, 그의 아들 문무왕 때였답니다.

그럼, 왕릉을 돌아보면서 무열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김유신의 동생 문희와 연을 맺다

 [해설] 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은 매우 각별한 사이였어요.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김춘추가 혼인을 하면서 둘은 혈연으로까지 맺어지게 되었죠. 김춘추와 문희의 결혼에는 김유신의 역할이 컸는데, 그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김유신에게는 보희와 문희라는 두 명의 동생이 있었어요. 어느 날, 언니 보희가 문희에게 간밤에 꾼 이상한 꿈 이야기를 들려줘요. 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더니, 경주가 오줌으로 가득 차서 물바다가 되는 꿈을 꾸었다는 거예요.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대뜸 그 꿈을 자기에게 팔라고 했어요.

[문희] 언니 그 꿈 나한테 팔아라. 내가 살게.

[보희] 뭐? 그런 기분 나쁜 꿈을 사서 뭐하게?

[문희] 언니가 요전에 탐내던 비단 치마 줄 테니까- 나한테 팔아라, 응?

[보희] 정말? 너 나중에 두말하기 없기다~!

[해설] 열흘 후, 춘추와 공차기를 하고 있던 유신은, 일부러 춘추의 옷을 밟아 옷고름을 떨어뜨렸어요. 그리고 동생 보희에게 옷고름을 달아 달라고 했는데, 보희는 거절을 하고 대신 문희가 춘추의 옷고름을 달게 되었죠.

[문희] 오라버니, 제가 꿰매드릴게요. 춘추공 옷. 이리 주셔요.

[해설] 그 일로 문희와 춘추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유신은 문희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유신] 네가 어찌 감히! 부모님께 아뢰지도 않고 아기를 가졌느냐!
[해설] 유신은 문희를 불태운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선덕여왕이 행차할 때를 맞춰 뜰 안에 장작을 쌓고 불을 지폈어요. 선덕여왕은 유신의 집에서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놀라 물었어요.

[선덕] 아니, 저곳은 김유신의 집이 아니더냐? 불이라도 난 게냐?
[신하] 장군께서 동생을 화형 시킨다고 합니다.
[선덕] 동생을 화형 시키다니? 도대체 무슨 이유로 친동생을?! [신하] 결혼도 안 한 여동생이 임신을 하였다고 합니다.
[선덕] 뭐라? 처녀가 임신을 하였다고? 아이 아비는 누구라더냐?

[해설] 그때 함께 수행을 하던 춘추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어요. 선덕여왕은 상황을 알아차리고 춘추에게 말했죠. [선덕] 춘추, 너의 소행이로구나, 그런데 뭘 하고 있는 게야? 빨리 가서 너의 정인을 구하지 않고! [춘추] 아, 네!

[해설] 그렇게 춘추와 문희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유신과 춘추는 혈연으로 맺어지게 되었답니다.

토끼와 거북이 (구토지설)

[해설] 왕위에 오르기 전, 김춘추가 고구려에 군사를 요청하러 간 적이 있었어요. 당시 신라는 백제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고구려 역시 신라의 적국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향한 길이었답니다. 김춘추가 어떤 각오로 고구려로 갔는지 알아볼까요?

선덕여왕 11년 642년 백제가 대야성을 함락했을 때, 춘추의 딸 고타소와 남편 품석이 죽었어요.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김춘추는 슬픔에 젖어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서서,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사람이나 물건이 그 앞을 지나쳐도 알아보지 못했죠.
[하인] 나으리. 식사는 하셔야죠, 네?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드시고 이렇게 기둥만 잡고 계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죽은 아기씨를 위해서라도 기운을 차리셔야죠, 나으리!

[해설] 김춘추는 복수를 결심하고, 딸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고구려로 떠나요.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러 간 거죠. 하지만 고구려의 왕은 그의 청을 거절하고 오히려 그를 위협했어요.

[고구려왕]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우리나라 땅이니 만약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넌 다시는 돌아가지 못 할 것이다.
[춘추] 국가의 영토는 신하들이 마음대로 할 바가 아닙니다. 그런 명령은 받들 수 없습니다. [고구려왕] 뭐라? 감히 내 말을 거역해? 여봐라 저놈을 옥에 가두어라!
[해설] 그렇게 옥에 갇힌 춘추는 죽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게 되고 말았는데. 어느 날, 고구려 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 선도해가 찾아와요.
[선도해] 춘추 공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아시오?
[춘추] 토끼와 거북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선도해]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에 병이 들었습니다. 토끼의 간을 약으로 쓴다면 나을 수 있었지요. 육지를 오갈 수 있었던 거북이는 용왕을 위해 토끼를 찾으러 갔습죠. 거북이는 감언이설로 토끼를 꾀여 용궁으로 데려가는데, 그제 서야 토끼는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렸던 겁니다. 간을 씻어 바위 아래 두었다며 토끼는 다시 육지로 올라갔고 그대로 숲 속 깊이 사라져 버렸지요.

[해설] 춘추는 이야기를 듣고 선도해의 의중을 깨달아 고구려 왕을 뵙기를 청했습니다. [춘추] 두 땅은 본래 귀국의 지역이니, 제가 귀국하여 우리 왕에게 이를 돌려드리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를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밝은 해를 두고 맹세합니다.
[고구려왕] 하하하. 그래. 이제야 네가 내 뜻을 이해하는구나. 저자를 풀어 주거라.
[해설] 그렇게 풀려난 춘추는 무사히 신라로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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