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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데 그 순간은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ㅎㅎ
도곡재의 모습이예요.
도곡재를 둘러보고 육신사로 향했습니다. 출입문 앞에 안내판이 있고요. 안내센터에 문화해설사도 근무하고 있습니다. 먼저 온 여행객들이 해설을 듣고 있는 걸 귀동냥해서 잠시 들었습니다. 친절하게 잘 설명하시네요.
달성군 하빈면 묘골에 순천박씨가 자리잡게 된 내력, 육신사에 사육신을 모시게 된 영화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육신사의 내력을 육신사 안내전단을 참고하여 요약해 봅니다.
사육신은 세조의 회유에 굴하지 않고 모진 고문 끝에 단종을 위해 순절한 분들이지요. 사육신 여섯 분의 집안은 모두 멸문의 화를 입고 남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여자들은 노비로 전락했습니다. 박팽년 일가도 그 화를 피해갈 수 없었지요.
둘째며느리 성주 이씨는 태중에 박씨 핏줄을 잉태한 상태로 관비가 되어 친정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태중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면 죽임을 당하고 딸이면 관노가 되는데 둘째며느리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다행히 그 무렵 딸을 낳은 여종이 있어서 그 딸과 바꾸어 길러 아들의 목숨을 겨우 보전할 수 있었다 합니다. 그가 바로 묘골 순천박씨 입향조인 박일산. 시절이 바뀌어 서슬퍼런 세조의 칼날이 지나간 성종조, 신분을 밝히고 사면을 받아 후손이 없는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묘골에 종택을 짓고 터를 잡을 수 있었지요.
그 후손들이 '절의묘'라는 사당을 세우고 박팽년의 절의를 숭상하며 해마다 제사를 모시고 있었는데, 그의 현손 박계창이 고조부 제삿날 꿈에 여섯 분 선생들이 사당 밖에 서성이는 것을 보고 다섯분의 제물도 함께 차려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 후 '하빈사'를 세워 여섯분을 함께 배향했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훼철되었던 것을 박정희 대통령 때 '충효위인유적정비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하네요.
사당 아래뜰에 서 있는 사육신의 유적비.
육각비석인데 각 면마다 사육신의 행적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성인문.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입니다.
숭정사
육신사 안내전단에 나와 있는 사당 모습입니다. 사호(祠號)를 '육신사'라 하지 않고 '숭정사'라 한 이유는 처음에 이 사당에 사육신의 위패와 함께 박팽년 부친의 위패도 함께 모셨기 때문이랍니다. 지금은 사육신의 위패만 모셔져 있고, 부친의 위패는 사당 앞쪽 언덕에 따로 모셨다 하네요.
외삼문 쪽에서 숭절당 들어가는 출입구입니다.
육신사 외삼문을 나와 묘리 동네 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녹색길' 이라 부르던데 누구나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이고 낙동강이 나무들 사이로 내려다보입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사육신을 기리기 위한 사당.
육신사(六臣祠)는 사육신인 하위지(河緯地),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성삼문(成三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와 박팽년의 아버지 박중림(朴仲林)을 모신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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