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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경주여행10/햇살 빛나는 아침 대릉원 숲을 다시 걷다/미추왕릉과 황남대총 가을 풍경/2018.11.9.

by 토토의 일기 2018.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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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십 년만에 대릉원을 걸어본 것이 너무 좋았나 보다. 언니들이 오늘 오전에도 대릉원을 한번 더 걸어보자고 한다.

한옥스테이 위연재에서 빵과 커피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짐을 꾸려 열 시 넘어 숙소를 나섰다.

비 그친 경주, 햇살 퍼지는 이쁜 가을날 아침. 스카이라인이 낮은 고도 경주는 어딜 보아도 맘이 편하다. 낡고 오래 되어서 더 좋은 곳.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곳이다. 삐까번쩍만이 좋은 것은 아니니 ....  이대로 좀 두었으면  ...

다시 표를 끊고

대릉원에 들어섰다.

어제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다. 비로 씻긴 숲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비 내리는 날의  운치는 느낄 수 없지만 청량한 숲 기운이 좋다.

미추왕릉 들어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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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숲에 낙엽이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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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왕릉 출입문이다. 이 왕릉 안의 단풍이 대릉원에서 젤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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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왕릉은 죽장릉(竹長陵)·죽현릉(竹現陵)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에 얽힌 전설로서 죽엽군(竹葉軍) 이야기가『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297년(유례왕 14)에 이서고국(伊西古國)이 금성(金城)을 침공해오자 신라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막아도 물리치지 못했다. 이 때 갑자기 이상한 군사가 나타났는데 그 수효는 셀 수 없고 모두 귀에 댓잎〔竹葉〕을 꽂고 신라군과 함께 적을 쳐 깨뜨렸다. 그 뒤 그들이 간 곳을 알지 못하던 중 누가 미추왕릉에 댓잎이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사람들은 미추왕이 죽어서 비밀스러운 병사로 도와준 것이라고 하였다.

미추왕의 성은 김씨이며, 신라 제12대 첨해왕(첨해이사금)이 아들없이 죽자 추대받아 신라 최초의 김씨 임금이 되었다.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金閼智)의 7대손이며, 갈문왕(葛文王) 김구도(金仇道)의 아들이다. 왕비는 광명부인(光明夫人)이다. 262년에 왕위에 즉위하여 284년 승하할 때까지 23년간 재위하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백제의 침입을 물리치고 농업을 장려하였다. 왕이 승하한 뒤 능의 이름을 대릉(大陵)이라 하였다.

('대릉원'이라는 이름이 미추왕의 능인 '대릉'에서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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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미추왕릉 관련 역사적 정보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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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신라 제13대 미추이사금의 능. 사적 제175호. 경주의 대릉원내에 있으며 단순한 둥근봉토분인데, 능 앞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혼유석이 마련되어 있고 남쪽에는 삼문이 있으며 왕을 제사하기 위하여 마련된 숭혜전이 있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미추왕릉은 대릉원 안에서도 별도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담장 밖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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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리단길쪽 담장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저 담장 너머에 황리단길이 있다. 옛날 집들을 개조해 아기자기한 카페를 열어 경주에서 젊은이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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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닿는 곳마다 단풍이 찬란하고 그 뒤로 능의 봉긋한 곡선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가을이면 감이 최고.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나무이다. 대릉원 안에는 잘 생긴 감나무가 많았다. 산수유, 모과나무도 많았고 ..... 능과 능 사이에 감나무가 그림처럼 서 있어서 발길을 멈추게 한다.

미세먼지 씻긴 하늘이 파랗다. 간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다.

황남대총 앞 벤치에서 다리쉼을 하며 지도자 언니가 끓여온 걸쭉한 대추차도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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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이다.
(황남대총은 1973년 7월과 1975년 10월에 문화재관리국 조사단이 발굴조사하고, 1980년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붙여진 별칭으로 황남동에 소재한 신라 최대의 고분이라는 의미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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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의 이름 모를 고분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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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 때는 정문으로, 나올 때는 후문으로 나왔다. 후문에서 나와, 대릉원 담장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곧 황리단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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