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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대구역 앞에서 만난 슬픈 역사/순종 황제 남순행 관련 전시물/2018.5.16.

by 토토의 일기 2019.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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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아트홀에 가기 위해 경산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역에 내렸다. 경산에서 대구 볼일 보러 나올 때는 버스를 주로 이용하지만, 오늘은 기차가 편한 장소라 처음으로 혼자서 기차를 타고 왔다.
시간이 여유로워 천천히 걸어 역을 나서는데 계단 아래서 처음 보는 조형물을 만났다. 뭐지 싶어서 주변을 살펴보니 순종황제 남순행(순종이 남쪽 지방인 대구 부산 마산 지방을 돌아다닌 일) 관련 전시물이었다.

기둥에 빙 둘러 유리곽을 만들고 그 안에 어가행렬, 어차, 궁정열차 등의 모형을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벽면에는 남순행 관련 사진과 기록물을 게시해 놓았고.

아래 글은 지역의 명망있는 문화계 인물 이동순 교수님이 지역 신문에 기고한 글을 옮긴 것이다. 순종황제 어가길을 보는 이교수님의 관점에 공감하며 오늘 대구역 앞에서 찍은 관련 사진을 글에 첨부하였다.

1909년 1월, 순종은 이토 히로부미의 강압적 요청으로 이른바 남서순행(南西巡幸)을 떠난다. 이토는 당시 일제가 조선에 설치한 침략기관 통감부 초대 통감으로 그 위세가 한 나라의 왕을 압도했다. 이토는 총리대신이었던 매국노 이완용을 불러 순종에게 남서순행을 위한 출발 준비를 통보한다. 순행의 목적은 전국적으로 끓어오르던 반일감정을 잠재우려는 의도와 여기에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뜻이 숨어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 순종은 화려하게 장식된 궁정열차를 타고 떠나 대구, 부산, 마산, 대구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순행 코스를 다녀온다. 이처럼 당시 순종은 이토 히로부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경부선으로 대구역에 도착한 순종과 그 일행은 대구군수였던 친일매국노 박중양과 그 일파들, 대구주둔 일본군 헌병대장, 경찰서장, 일본거류민단 대표 등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그들과 악수하며 격려한다.

그러곤 가마를 타고 북성로 일본인 거리와 수창동을 지나 달성토성(현 달성공원)까지 간다.

이 행차 때문에 길가의 민가 상당수가 돌연 철거됐고, 확장된 도로 위에는 흰 모래를 깔았다. 달성토성에는 1906년 대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그들의 왕 메이지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그 기념으로 세운 황대신궁 요배전이 있었다. 순종은 그 앞에 가서 90도로 허리 숙여 절했다. 순종이 참배한 곳은 사실상 일본의 신사(神社)였다. 순종은 곧바로 대구역으로 가 부산, 마산을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대구에서 하루 묵으며 대구권번의 기생연회를 구경한다.

바로 이 경과가 망국 직전, 가련한 왕 순종의 모든 발자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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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순종어가길 무엇이 문제인가(영남일보. 2017.10.10)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힘없는 임금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일제에 반발하는 민심을 수습하러 나선 순행길. 그 순행길에서 황제가 한 일이 달성공원에 있는 일본신사에 참배하고, 기생공연을 관람하는 것이었다니. 그래도 백성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했다. 그 슬픈 망국의 역사를 똑바로 기억하자.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것은 안 된다. 아픈 것은 아프게 기억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아픈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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